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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여인들 2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1. 4. 2.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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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강과 일곱 개의 산맥 너머에, 사람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도시 조라가 있습니다. 여러 갈래로 뻗은 길들을 따라 끝이 없는 낮은 담들이 이어져 있으며 그 안쪽에는 황토 빛의 건물과 하얀 빛의 사원이 그 길들 사이로 희미하게 비치는 곳입니다. 어린이들은 수 백개의 수로를 따라 행진하고 술에 취한 남녀의 웃음소리가 대낮부터 들려오며 정숙한 사람들은 골목길의 끝마다 위치한 골동품 가게에서 책을 읽는 도시였습니다. 지나가기 힘들 정도로 작은 문들이 통로 곳곳에 그늘을 만들고 그 틈을 지나면 너른 풀밭을 낀 집들이 곡선처럼 늘어있는 곳입니다. 그 집들은 작았지만 전부 들여다보기엔 놀랍도록 크기도 했습니다. 벽 틈 사이의 작은 문양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문양 사이에 더 작은 세공의 흔적이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고, 한참 뒤엔 그 안에 또 다른 조각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입니다. 폐하가 지금까지 듣고 본 어떤 훌륭한 세공예술가도 그런 경지를 만들어 내진 못할 것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히 그 도시를 잊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집들은, 도시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열띤 흥분을 지닌 채 도시는 취객과 축제의 함성으로 끊이질 않았지만 한편으로 그 도시는 사람들이 자신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그대로 멈춰 있었던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저는 그 도시를 찾아 배를 타고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도시의 자리엔 흩어지는 모래들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그곳에 서있다가 한참 뒤에 저 멀리에서 지나가는 한 무리의 행상을 보고는 여기에 있던 도시가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오래전 젊은 여인처럼 빛나고 호기심 넘치던 이름 모를 도시 하나가 이곳에 있었다는 걸 들었지만 지금 남아있는 건 바람에 풍화된 돌주석들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조라는 잊혀져 버렸습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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