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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와 기억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1. 4. 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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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여의에서의 삶은 무척 바쁩니다. 한때는 섬이였다고 알려진 그곳은 이젠 육지가 되었고, 그 한가운데엔 넓고 넓은 공원이 있지만 분주히 걷는 이들 중 그곳을 제대로 즐기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공원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하나의 거대한 통로가 됩니다. 전 그 통로에 서서 광택이 나는 정장을 입은 여의 사람들이 공원을 가로지르는 걸 지켜 본 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머리가 하얗고 체격이 호리호리한 노인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을 보며 받은 이상한 느낌은 대도시 여의에 대한 제 감정을 잘 설명해주고 있었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가파른 건물들은 서로의 시야를 가려주며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직사각형의 끝없는 도로는 직사각형의 건물들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곳의 서쪽 끝에는 비취색의 돔과 주석으로 포장된 거리가 있습니다. 유일하게 이질적인 그 건물은 가장 사람들의 눈에 띄는 곳에 위치해 있지만 가장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제가 그 도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도시에 버스와 지하철의 복잡함을 마다하지 않고 간 이유는 흔히 볼 수 있는 높은 빌딩과 자욱한 공기, 붐비는 커피숍과 분주한 사람들을 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밤이 되면 모닥불 주위 양탄자에 앉아 서쪽에서 내려온 전설과 북쪽의 도적때들, 숨겨진 지도와 연인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각자 하곤 했다는 아라비아의 옛 정취를 기대할 순 없겠지만, 저 역시 누군가가 저에게 들려줄 자신만의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나른하게 앉아있을 때, 배낭을 짊어지거나 옆으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그가 제게 들려준 이야기 하나하나를 다시금 곱씹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도시를 떠나면서 본 공원은 여전히 한적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엔 누군가의 기억들이 무수히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곳의 한켠에 제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그에게 건네준 기억은 어디를 흘러가게 될지 상상해보았습니다. 도시의 기호들 사이를 잊혀진 채 돌아다니다가 어느날 문득 그의 가슴에 떠오를 저의 기억을 전 생각해봅니다. 그 도시에서는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수많은 교환이 이루어지고, 전 또 다른 기억을 교환하기 위해 도시로 향합니다.

 

-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기리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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