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베리가 어린왕자를 발표한 것이 1943년이고 우리나라에 최초 번역된 것이 1972년이었으므로, 옷차림을 포함한 사람의 외모가 그 사람의 평가에 놀라운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적어도 어린왕자라는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게 된지 39년은 된 셈이다. 사실 더 오래 전의 전래동화를 통해서도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개구리가 잘생긴 왕자로 변하고, 착한 신데렐라는 멋지고 부유하며 권력을 가진 왕자와 결혼한다. 따라서 난 그러한 사실, 즉 우리가 겉모습을 보고 사람을 판단한다는 사실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외모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평가에 대응하기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외모를 꾸며왔다. 좋은 차, 좋은 집, 말쑥한 옷, 부드러운 표정, 화려한 언변. 그렇게 좋은 외모를 얻기 위해 우리가 일련의 반복된 학습을 수백 년간 해온 것 역시 사실이다. 따라서---어떤 면에서---사람들이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으며 그런 사실이 다만 인간의 무의식 속에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단지 사람의 무의식에 머물러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전 사람의 성격을 제일 중요하게 봐요." 대다수의 사람이 말은 저렇게 하지만, 실험 결과 실제로는 누군가의 첫인상을 단지 외모로 평가한다는 결론을 내린 어떤 TV 프로그램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럴 수 밖에 없는 것 아니었을까. 성격을 제일 중요하게 본다는 말이 외모는 전혀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기 때문이고, 첫인상이란 외모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인 데다가, 그 사람의 외모(옷차림 등)는 그 사람의 성격을 일부 반영하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전 성격이 제일 중요해요"라고 말한 사람에게 "저분 첫인상이 어떠세요? 혹시 저분이 만나자고 하면 만나실 의향이 있으세요?"라고 물었을 때, 어쩌면 그 프로그램 제작진은 "성격이 좋아보일 것 같아요. 네, 만나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런 대답이었다 할지라도 '성격'에 대한 판단은---그 사람의 인격적 아름다움에서 기인한 '오라'가 그 사람의 얼굴 뒤에서 후광처럼 빛나고 있는 걸 본 게 아니라면---외모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다. 만일 어떤 사람이 외모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100% 순수히 성격만으로 만날 사람을 정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거지같은 행색에 더러운 게 잔뜩 묻어있고 이상한 냄새까지 나는 데다가 나이도 훨씬 많아보이는 사람과도 만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억지이다. 왜냐하면 그런 외모를 풍기는 사람에게서 '괜찮은' 성격을 기대하기란 경험적으로도,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격을 제일 중요하게 보는 사람일지라도 성격 30%, 외모 20%, 돈 15%, 이런 순서로 중요도를 매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외모+돈하면 결국 성격보다 중요해진다). 결국 성격을 판단할 때---첫 만남에서는---외모가 판단 근거로 작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 사람에 대한 첫인상 평가 시에 성격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게 된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그런 가능성과 사실을 배제한 채, 우리가 겉으로는 성격을 중요시한다지만 사실은 외모를 훨씬 더 중요시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런 것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어있다고 결론내린다.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사실들이 우리의 무의식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우리가 이처럼 무의식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런 무의식의 작용, 즉 우리가 세속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의도하지 않았다고 믿는 순간------우리는 통속을 벗어나 신비로워지고 보다 순수해지며, 윤리적인 어떤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멋진 신세계'를 선물받게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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