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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적 대화

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1. 12. 3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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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의 시대. 이제 아날로그를 그리워하는 말들이 새삼스럽지는 않다. 이메일나 문자가 활성화되자 사람들은 손으로 쓴 편지를 그리워하고,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이 활성화되자 사람들은 아날로그적 관계를 그리워한다. 그때 난 집배원도 없어서 누군가를 만나려면 직접 몇 십리를 걸어가야 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러다 우정국이 만들어지고 점차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러 직접 가야할 필요성이 없어지기 시작했을 때, 그때 사람들은 편지가 아니라 누군가를 만나러 직접 길을 걸어야했던 예전의 정취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몇몇 사람들은 손으로 쓴 편지가 손쉬운 인간관계를 만든다는 과격한 주장을 했을지도 모른다.

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필름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필름 카메라로 예술 행위를 시작했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디지털 카메라가 처음 나왔을 때의 사람들의 반응을 기억한다. 어떤 유명한 사직작가는 아무리 디지털 카메라가 인기가 끌어도 자기는 끝까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겠다며 유명 필름 회사와 손잡고 CF도 찍었었다. 거부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도 예술의 한 범위로 포함되며, 심지어 CG를 이용한 그래픽 이미지도 예술 행위로 인정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필름 카메라를 그리워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카메라 이전의 회화 행위만을 그리워한다. 필름 카메라만을 인정하였던 어떤 사람들은 컴퓨터로 조작 가능한 디지털 사진은 어떤 예술 범주로도 포함시킬 수 없다고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처음 카메라가 발명되었을 때 몇몇 화가들이 사진기를 무시하며 주장했던 것들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간간히 아날로그로의 회귀를 그리워할 때 난 그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곤 했다. 관계나 대화에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란 질적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단지 수단의 차이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날로그가 디지털에 비해 아무리 친밀성을 띠더라도 내용에 진실성이 없으면 디지털을 통한 대화나 관계보다 나을 것이 없어보였다. 그래도 수단의 변화만으로도 내용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이메일로 빠르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한 글자라도 잘못 쓸까봐 걱정하며 쓴 손 편지에서 자신도 모르게 정성이 배어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리움의 가치는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애초에 무언가를 쓰려고 손을 들었던 그 마음 자체를 변화시키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어떤 매개물에 대한 감정과 분위기는 그 시대상과 그 시대 속의 인물의 감성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앞으로도 어떤 사람들은 낭독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할 것이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종이책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할 것이며, 또 어쩌면 먼 미래의 사람들은 전차책 시대의 분위기를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아날로그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디지털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그 책을 통해 사람들이 받는 감동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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