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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시

by solutus 2012. 7. 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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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여관방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근처 여관에 방을 잡은 뒤
화장실에 들어섰을 때

그곳 샴푸케이스 위에서 교미 중인

바퀴벌레 한쌍을 발견했다

처음부터 죽일 생각은 없었다
조금 떨어져 경직된 모양새로 한동안 쳐다보다
도망이나 가라는 심정으로
샴푸케이스를 내리쳤다

그러나 둘은 약간의 경련을 일으킬 뿐
떨어져 각자의 길로 도망치지 않았다
내 흥미가 사라지길 기다리기라도 하듯
서로 엉덩이를 맞댄 채


그때였다. 저 둘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정분에 눈이 먼 한쌍을 대야 안으로 유인한 뒤
지체 없이 변기통에 던져 넣었다
표면에서 곧 익사할 

여전히 떨어질 줄 모르는 미물 한쌍


난 변깃물을 내렸고

구정물통으로 빨려 들어갈 그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했다

옷을 빨고 몸을 씻은 뒤

변깃물에 빠져서도 교미에 집착하던 

바퀴벌레를 생각했다

이것도 죄악이란 말인가?

쾌락이 이토록 혐오스러울 수 있단 말인가?

 

일부러 외면했던 그들의 최후가

성교 행위를 멈추지 않은 온갖 형상으로 나를 덥쳐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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