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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리 식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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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상실증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자연적 발생이 아니라 외부의 갑작스런 충격에 의해 기억을 잃어버렸을 때 부르는 병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상실증을 아주 특이한 경험에 처해졌던 극소수의 사람들에게서나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해 보면ㅡ이 병이 바로 그 '상실'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ㅡ우리는 우리가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을, 오래전의 놀라운 충격에 의해 우리 과거의 어떤 한 부분을 송두리째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파트릭 모디아노는 우리의 삶을 비슷한 방식으로 추적했다. 별다른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던 어느 한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어떤 한 사건에 의해 송두리째 잊고 지내왔던 자신의 충격적인 과거를 서서히 기억하게 되는 것이다.


난 체리를 볼 때면 비슷한 감정에 빠졌다. 체리와 관련된 어떤 옛 추억을 가지고 있는 듯했지만 그게 무엇인지를 도통 떠올리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케이크 위쪽에 꽂혀 있던 체리를 항상 바라만 봤을 뿐, 단 한 번도 먹고 싶다고 말하지 못했던 내 어린 날의 기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무언가가 부족했다. 난 마트에서 체리를 볼 때마다 어떤 인상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그 조그마한 것의 가격이 놀랍도록 비싸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난 붉은 색을 좋아했지만 체리의 색은 강렬하게 붉지 않았다. 게다가 난 체리가 정확하게 어떤 맛인지도 잘 기억해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내 마음을 끌곤 했다.


여러번 미루던 체리 구입을 이번에 한 것은 그 어렴풋한 감정에 다가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올해 체리 가격이 많이 내렸다는 뉴스를 듣긴 했지만, 굳이 그 소식이 아니더라도 이번엔 체리를 보게 되면 무조건 구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식빵을 만들 때 그 안에 생체리를 집어 넣은 것은, 그러니까 집에 있는 건조 블루베리와 건조 라즈베리를 놔두고 굳이 생체리를 식빵에 넣은 것은 그 심리와 연관이 있었다. 생블루베리를 넣은 식빵이 이미 시판되고 있었기에 식빵에 생체리를 넣었다는 것이 그리 특기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흔한 레시피는 아니었다. 생체리를 넣은 채 식빵을 구워내면 그 안에서 체리가 얼마나 익게 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수확하게 되었을까? 내가 원한 소기의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그것은 파란을 일으켰다. 그것은 내 개인적 경험이 나에게 준 인상을 다른 이들은 쉽게ㅡ어쩌면 결코ㅡ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렬하게 상기시켰다. 대중이란 한 사람의 극히 개인적 경험이 형성시킨 그 사람만의 특성을 자신들에게 맞춰 변형시킴으로써 그를 '정상'으로 편입시키고자 시도하는 무리이며, 따라서 근본적으로 그들은 한 개인을 이해할 수 없다. 대중은 바닥의 흰 선을 밟지 않은 채 걸어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고 그 편력을 야기시킨 그의 경험에 공감하기보다는ㅡ대중은 원인을 찾지 않는다ㅡ그걸 밟아도 아무렇지 않다는 걸 증명하려 애쓸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대중을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이해받길 원할 뿐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또 한 무리의 대중인 내가? 난 항상 어두운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등을 밝힌 한 무리의 차가 내 곁을 지나가면 난 잠시 밝아졌다가 다시 어두운 거리에 묻혔다.


체리 식빵을 만들기 위한 빵 반죽. 2017. 5.11.


완성된 체리 식빵. 2017.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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