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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 (2), 과학의 위험한 혐의

텍스트의 즐거움

by solutus 2016. 1. 9.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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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 밖의 경제학>에 대한 감상은 참으로 복잡하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일방적이다 싶을 정도로 좋은 후기를 남겨 놓은 이 책은 사람들의 심리를 기반으로 우리들이 비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경향을 잘 설명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 보면 이 책에 던져지고 있는 찬사가 의아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상한 점들이 상당하다는 걸 알 수 있기에 이 책에 대한 평이 참으로 다난해지게 된다.

 

우선 이 책에서 들고 있는 '예측 가능한 비이성적 행동들'의 사례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절대적인 비교가 아니라 상대적인 비교를 하게 된다거나, 상대적으로 이익이 덜하더라도 공짜인 쪽을 더 선호하게 된다거나,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강하다거나 등등,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는 모든 행동들이 이미 다 잘 알려진 내용들이었다. 이 책이 출간된 해가 2008년인데, 7년 전엔 이런 내용이 비밀에 감춰져 있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두 번째 문제로, 저자는 실험을 바탕으로 인간의 어떤 새로운 행동 패턴을 밝혀내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잘 알려진 행동들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간단한 사례 실험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 근거로 이 책에 나오는 각종 사례 실험들의 논리적 비약성을 들 수 있다. 저자 댄 애리얼리는 인간의 어떤 판단이 비이성적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자신의 사례 실험을 통한 반례를 들고 나오는데, 그 반례가 기존의 상식을 뒤집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가령 <반값에 파는 물건을 보게 되면, 본능적으로 그 물건의 질이 정가에 파는 물건보다 떨어질 것이라고 여기는> 우리의 경향이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부분을 보자. 물론 가격과 품질이 "무조건적으로" 비례한다고 여기는 건 비이성적인 판단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격과 품질이 "어느 정도" 비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비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여길 수는 없다. 가격과 품질이 비례한다는 믿음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는 보고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한글판 제목에 "상식 밖"이라는 수식어가 달린 것은 저자가 앞서 예시처럼 기존의 경향을 뒤집는 사례, 즉 가격과 품질이 비례하지 않는 예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가격과 품질이 "무조건" 비례한다고 여기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으며(무조건 비례한다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가격과 품질이 비례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비례하는 경우 역시 있음을 부정하지는 못함에 주목해야 한다. 즉 이 책은 우리가 <노력하는 자는 성공한다>라고 알고 있는 일반적인 상식에 <노력하지 않아도 성공하는 자가 있다>는 예외적인 상황을 제시한 뒤, 그 상황에 맞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간략한 실험들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존의 수많은 올바른 사례는 가만히 놔둔 채, 몇 가지 반례를 들고 나와서 그걸 근거로 기존의 행동이 비이성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엔 비약이 있다.

 

게다가 저자가 <상식 밖>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내용들의 상당수가 실상은 상식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굳이 사례 실험을 통해 '자, 내가 증명해 줄게' 하며 나설 필요가 없었다. 예를 들어 보자. 저자는 <친구가 자장면을 시키면 난 짬뽕을 고르고 싶어지는> 상황에서 우리의 비이성적 선택을 발견한다. 저자는 '내'가 원래 자장면을 먹고 싶었으면서도 친구의 선택에 의해 짬뽕을 고르게 되었으므로 비이성적인 행동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자신이 먹고 싶은 걸 참아가면서 모두에게 이로운 선택을 했던 '내'가 과연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 것인가? 오히려 더 현명한 선택을 한 것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저자가 이성과 비이성을 나누는 근거는 상당히 의문스럽다. 저자는 우리가 상황에 의한 선택을 하게 되면 그것이 비이성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상황이 없었으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그런 상황에 지배당해 자신도 모르게 비이성적인 선택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말대로 지배당했던 것인지 명확하지가 않다. 앞서의 자장면과 짬뽕 사이의 선택은 아무리 봐도 상황에 지배당한 게 아니라 상황에 맞게 '이성적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 쇼핑 중에 무료 배송권을 얻기 위해 원래 생각하지 않았던 물건을 더 사게 되는 경우는 어떠한가? 저자의 주장대로 우리가 업체의 공짜 전략에 농락당한 것인가, 아니면 언젠가 필요하게 될 물건을 미리 같이 구매하여 배송료도 아끼는 현명한 선택을 한 것인가? 저자는 물건을 더 사게 되는 결과는 비이성적인 행동이라는 결론을 너무 쉽게 내린다. 모든 비슷한 사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저자의 그런 일방성은 이 책의 편향성을 드러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던 것을 비로소 알게 되는 듯한 환영을 겪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환영이다. 그 환영은 우리가 이미 몸소 체험하고 있던 것을 글로 재확인하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새로움이다. 나 또한 그런 환영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지금 몇 가지 만들어 보겠다. 우선 난 다음과 같은 명제를 세울 수 있다. <사람들은 평소에 자신이 불법 행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믿지만, 다른 사람들이 먼저 불법 행위를 하면 쉽게 따라 하게 된다.> 이런 주장을 펼친 뒤 왕복 2차선의 한가한 도로에 세워진 횡단보도에 가서 사례 실험을 하면 된다. 한 사람의 무단 횡단 때문에 빨간 불에 서있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무단횡단 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무슨 명제를 만들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소리 높여 이야기하는 모습을 싫어하며 자신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 여기지만, 온갖 사람들이 떠들고 있는 지하철에 타게 되면 자신 역시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된다.> 이것 역시 사례 실험을 통해 멋지게 재현 가능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비이성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주장하면 된다. 그러나 여전히 다음과 같은 의문을 들어 반박이 가능하다.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왕복 2차선 차로에서, 모두 무단횡단을 하는데 혼자 신호를 지키는 게 과연 합리적인 행동인가? 모두가 떠드는 곳에서도 나 혼자 조용히 말하며 교양을 지키는 건 합리적인 판단인가, 도덕적인 판단인가, 아니면 이성적인 판단인가? 이성적 판단이라면, 그럼 과연 이성이란 무엇인가?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가 느끼게 되는 다난함, 그것은 과학에 대한 회의감이다. 이 책이 과학서적은 아니지만 많은 인문과학 서적들이 그러하듯 이 책 역시 과학적 방법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이란 신빙성 있는 학문인가 하는 질문에 많은 과학철학자, 과학사회학자 들이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이 근거로 내밀고 있는 사례 실험과 그를 근거로 한 주장을 보면 과학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심하게는 사회 구성주의자들의 주장처럼 과학이 그저 "협상의 산물"처럼 느껴지거나, 적어도 쿤이 주장한 패러다임의 한 패턴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이 책을 쓸모 없는 책으로 간주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 단정지을 수는 없었다. 이 책은 단지 완벽하지 않을 뿐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나 코페르니쿠스의 저서도 완벽하지는 않았다. 완벽하지 않은 진술의 불편함, 그러나 그 진술이 (어느 방향으로든) 도움이 되긴 한다는 사실의 공존. 이것이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겪게 되는 내 복잡한 감정의 전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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