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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의 중요성, 초콜릿 수플레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2. 3.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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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상드르 발타자르 로랑 그리모 드 라 레니에르, 보통 줄여서 그리모라고 부르는 이 프랑스인은 미식 문학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사람으로, <호스트 개론>(1808)에서 훌륭한 호스트라면 깊고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메뉴를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당시의 부유한 집안은 익숙한 요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 비슷하고 한정적인 메뉴로 손님을 접대하였는데, 그리모는 호스트가 그런 매너리즘을 타파하길 바라며 글을 썼다. 그런데 익숙한 요리를 선호하던 것이 꼭 그 당시 특별 계층만의 흐름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부유하든 그렇지 않든, 바쁜 하루 중 시간을 내어 그간 해보지 않은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기란 현대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메뉴가 한정적이면 요리하는 사람 스스로도 고민에 빠지게 될 때가 온다. 그래서, 익숙함도 훌륭한 가치이지만, 새로운 경험에 가치를 두어 보고자 초콜릿 수플레를 만들었다. 미리 사둔 초콜릿이 없었다면 이처럼 즉흥적으로 만들어 보진 못했을 것이다.


초콜릿 수플레는 "Salt, Fat, Acid, Heat"의 저자인 사민 노스랏이 요리 인생에 중요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해준 디저트라 할 수 있다. 그녀는 한때 미쉐린 스타[각주:1]를 받기도 했던 미국 버클리의 유명 레스토랑인 '셰 파니스'에서 이 초콜릿 수플레를 맛본 계기로 그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수플레를 한 입 먹고는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서빙 직원에게 "포근한 초콜릿 구름 같은 맛이 난다"며 들뜬 기분으로 말했다. 내 수플레에서도 그런 맛과 감촉이 났을까? 어쩌면. 초콜릿 이야기만 하면 눈이 번쩍 뜨이는 첫째는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아내는 맛있다는 감탄사를 연거푸 내주었다. 구름은 구름이되 먹구름이었을 테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미식의 세계에 조금씩 눈을 떠간다.


내 입 안에서는 아직도 다크 초콜릿 특유의 맛이 맴돌고 있다. 수플레를 한번에 두 개나 먹어버린 탓이다. 초콜릿 수플레와 어울리는 음료, 하다 못해 우유라도 같이 마셨으면 좋았을 텐데. 초콜릿 수플레를 다 먹고 난 후 기존 레시피에서 초콜릿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따로 메모를 해두었다. 맛이 조금 더 약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미킨에 발라둔 설탕을 마지막에 닦아내지 않은 일도 메모에서 빼놓을 수 없다.


집에서 직접 만든 초콜릿 수플레. 2020. 2. 3.



  1. '미슐랭 스타'라는 명칭이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지사에서 사명을 '미쉐린'으로 정하면서 기존에 쓰이던 '미슐랭 스타'라는 용어 또한 '미쉐린 스타'로 정해졌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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