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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야생화 기르기, 식물 배치의 문제와 2년차 징크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2. 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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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가을, 둥근잎꿩의비름이 꽃을 피웠었다. 빛이 부족한 아파트 실내였지만 야생화가 꽃을 피워냈다며 놀랄 필요는 없었다. 본래 식물은 자리를 옮긴 당해년에는 빛이 부족한 곳에서도 꽃을 피우곤 한다. 실외에서 빛을 받으며 미리 축적해 놓았던 에너지가 잎과 줄기에 남아 있는 덕분이다. 하지만 그 다음 해가 되면 양상이 달라진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겨울을 보내며 꽃까지 피워낸 식물은 그 다음 해부터는 새로 획득한 에너지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실내는 창가라 해도 야외에 비하면 빛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광합성 부족에 시달리게 된다. 식물, 특히 야생화가 첫해에만 꽃을 피우고 그 다음 해부터는 꽃을 잘 피우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2년차 징크스라 해도 좋을 것이다. 


우리집의 둥근잎꿩의비름도 2년차 징크스를 견뎌야 했다. 둥근잎꿩의비름은 빛이 잘 드는 평지에서는 7~8월에, 산이나 계곡에서는 10월경에 꽃을 피우는데 우리집의 둥근잎꿩의비름은 가을이 지나 초겨울이 되도록 꽃이 피지 않았다. 작년 5월부터 여름이 다 지날 때까지 직사광선을 거의 보지 못한 탓이었다. 여름이 문제였다. 아파트가 남동향이라면 오전 중에, 남서향이라면 오후에 직사광선을 볼 수 있을 테지만 우리집은 거의 정남향에 가까워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집안으로 빛이 들지 않았다. 아직도 남향집은 여름에 해가 너무 들어 덮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다. 아마도 태양이 보이지 않는 북향집과 대비하여 남향의 볕을 강조하다 보니 그런 오해가 깊게 자리잡은 듯하다.


이처럼 여름에 빛을 보지 못하자 둥근잎꿩의비름은 빛을 찾아 웃자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리창에 속절없이 가로막힐 뿐이었다. 가을이 다 지나가도록 꽃이 피지 않자 아내는 실망하는 듯했다. 난 둥근잎꿩의비름이 가을부터는 계속 빛을 볼 테니 결국 꽃을 피울 거라며 희망을 심어 주었다.


어쩌면 둥근잎꿩의비름은 꽃을 피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창가에 두었다고 식물에 그냥 빛이 드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내에서 키우는 야생화는 대체로 키가 작기에 배치에 따라 빛을 받는 양이 크게 달라진다. 같은 실내의 아주 비슷한 위치라 하더라도 약간의 변화에 따라 빛을 받는 시간이 몇 시간 넘게 차이날 수 있다. 실내로 직사광선이 들이치는 시간이 7시간이라고 했을 때 집안의 어떤 식물은 그 7시간 동안 전부 빛을 받는 반면 어떤 식물은 1시간도 받지 못한다. 그러니 크기에 따라 식물의 배치를 세밀히 조정해야 한다.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사진상 앞쪽에 있는 식물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고 있다. 2019. 12. 3.


비슷한 위치에 있지만 빛의 명암에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2019.12. 3.



우리집 둥근잎꿩의비름도 그랬다. 처음에는 빛을 잘 받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둥근잎꿩의비름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에 따른 빛의 변화를 살펴 보니 창문의 틀과 다른 식물의 그림자에 갖혀 있는 시간이 상당했다. 난 재배치에 꽤 공을 들였다. 그래서 하루 2시간도 되지 않았을 둥근잎꿩의비름의 일조량을 5시간 이상으로 늘일 수 있었다. 


그리고 보답처럼, 이 겨울에, 둥근잎꿩의비름이 꽃을 피웠다.


꽃이 핀 둥근잎꿩의비름. 2020. 2.1.


꽃이 핀 둥근잎꿩의비름. 202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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