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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산 양식 가리비, 손질, 부착생물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1. 20.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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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번에 구매한 가리비는 러시아산이었다. 처음부터 러시아산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건 국내산이었지만 큰가리비가 아니라 그보다 작은 비단가리비처럼 보였다. 종류는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구매가 망설여졌다. 다음에 들른 마트엔 가리비가 아예 없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울산 농산물종합유통센터 로컬푸드 직매장'이었는데, 마트 안에 수산 양식 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왠지 가리비가 있을 것 같았는데 아니나다를까 '국내산 가리비'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는 매대가 있었다. 마침 직원이 없어 아이와 함께 오징어, 광어, 가자미 등을 구경하며 한동안 기다렸다. 식사하러 간 것인지ㅡ저녁식사 시간대였다ㅡ도통 직원이 오지 않고 아이도 슬슬 지겨워하여 그냥 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직원이 돌아왔다. 기쁜 마음에 가리비 1kg을 달라고 하자 직원은 머뭇거리며 가리비가 비싸다고 했다.


"가리비 1kg 주세요."

"그런데 지금 가리비가 좀 비싸요."

"얼마나 하는데요?"

"2만 원이 넘을 건데요. 2만 5천 원....? 지금 러시아산밖에 없는데 러시아산이 비싸요."

"여기 국내산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국내산은 남해에서 가져온 건데 다 폐사했어요."


1kg에 2만 5천 원이라. 난 잠깐 망설이다 구매하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이었지만 가리비 구매에 더 시간을 쓰고 싶지 않았다. 직원은 양식장 위로 성큼 올라서더니 기다란 작대기로 양식장 바닥에 놓여 있던 가리비 양식판을 끄집어 올렸다. 직원은 가리비 8개를 망에 담은 뒤 저울에 올렸다. 2만 8천 원이라는 표시가 떴지만 직원은 2만 5천 원에 해드릴게요, 하며 눈빛으로 구매 의사를 다시 물었다. 곧 내 손에는 비닐이 찢어져 조금씩 물이 새어 나오는 가리비 봉투가 들려 있었다.



2.

큰가리비를 손질하고자 비닐을 찢고 가리비를 싱크볼에 쏟아냈다. 그제야 가리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우선 패각에 석회관이나 따개비 같은 부착생물이 거의 없는 게 눈에 띄었다. 가리비의 경우 보통 부착생물의 유무로 양식과 자연산을 구분하는데ㅡ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다르게ㅡ패각에 부착생물이 많으면 양식일 가능성이 크다. 양식용 수조에선 석회관갯지렁이 같은 부착생물이 자라지 않을 것 같지만, 취미로 해수어나 산호를 길러 보면 어두컴컴한 섬프 수조에서 수많은 웜과 갯지렁이가 저절로 생겨난다는 걸 알게 된다. 양식 가리비는 좁고 기다란 칸막이형 채롱에 담거나 줄에 매달아[각주:1] 중간 육성하므로 가리비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고, 그래서 패각 위로 부착생물이 수월하게 자랄 수 있다. 실제로 바다 양식장에 가보면 석회관이 여러 개 붙어 있는 수많은 가리비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부착생물의 유무만으로 자연산과 양식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는 없다. 양식이라 하더라도 패각 위의 서관과 부착생물을 손질 중 떼어낼 수 있고 또 모든 양식 가리비에 부착생물이 자라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자연산 가리비라는 증거로 가리비에 붙어 있는 부착생물을 무작정 내세우는 횟집이 많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바다 양식장에서 들여온 가리비를 바다에서 키웠다는 이유로 자연산이라고 말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시중에 있는 가리비는 거의 대부분 양식이다.



3.

가리비 겉면을 몇 번 씻어낸 뒤 칼을 넣어 관자 끝을 자르자 가리비가 입을 열었다. 몇몇은 붉은색 생식소가 선명하여 암컷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수컷은 생식소가 백색에 가깝다. 


나는 가리비로 찜이나 탕을 하려는 게 아니라 구워서 그 위에 캐비아를 올릴 생각이었으니 관자 크기가 작으면 안 되었다. 아주 클 필요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 크기는 나와주어야 했다. 러시아산 큰가리비는 패각만 큰 게 아니라 관자 크기도 커서 내가 쓰기에 적당했다. 단순히 크기만 만족스러운 건 아니었다. 내가 가리비를 구워 만든 오르되브르는 캐비아가 주인공이라 해야 할 텐데, 놀라움에서는 가리비가 더 컸다. 앞뒤로 노릇하게 구운 가리비의 쫄깃한 식감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이 러시아산 가리비는 입에 넣는 순간ㅡ말 그대로ㅡ눈이 녹듯 흐무러졌다. 선호하는 식감은 사람에 따라 다를 테다. 


아래 영상에는 가리비를 손질한 뒤 캐비아를 올려 크림 소스를 만드는 과정을 담아두었다.



울산 농산물종합유통센터 로컬푸드 직매장의 직원이 큰가리비를 옮겨 담고 있다. 울산, 2020. 1.16.


손질 전의 큰가리비. 부착생물 유무만으로 양식과 자연산을 구별하기는 어렵다. 2020. 1.18.


관자 끝을 잘라 패각을 열어둔 모습. 2020. 1.18.


가리비의 관자에 캐비아를 얹어 만든 크림 수프. 2020. 1.20.




  1. 보통 '귀매달기형' 양식이라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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