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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시대의 음식물 재활용, '중고' 재료로 만든 사과 콩포트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1. 20.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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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세 유럽인들도 남은 음식물을 재활용했다. 저택이나 왕실의 연회가 끝나면 적지 않은 음식물 쓰레기들이 나왔는데, 이런 음식물들을 재판매한 기록이 상당히 남아 있다. 남은 음식의 재활용은 당시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상한 음식물을 재활용하면 위생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사용 기준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당시 프랑스 왕실은 두 번 구운 고기, 곰팡이 핀 소시지 등은 곧바로 폐기하라는 행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중세의 유럽 길드도 음식물 재활용에 나름의 기준을 세워두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소비자들처럼 중세의 소비자들 역시 재활용 음식물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원재료가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잘게 썰어버린 음식물이 문제였다. 중세 서민들은 요리사들이 재료를 잘게 썬 뒤 반죽에 넣거나 냄새가 강한 양파와 섞는 이유가 상한 재료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의심하곤 했다.[각주:1]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루가 아닌 '스틱' 형태의 시나몬을 구매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루 상품은 대개 품질이 떨어지는 원재료를 가공하여 만든다는 속설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런 속설이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는 것을 분쇄 커피 원두와 과일 주스를 비롯한 온갖 갈아내는 형태의 상품 제조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알랭 뒤카스나 마시모 보투라 같은 세계의 저명한 셰프들은 낭비되고 있는 수많은 음식물 쓰레기들을 재활용하여 빈민들에게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를 운영 중인데, 이 문화 프로젝트의 성공도 위생 문제와 떨어질 수 없다. 이들이 운영하는 무료 급식소의 놀라움은ㅡ잘게 썰거나 푹 익혀 원재료를 알아볼 수 없는 음식이 아니라ㅡ원재료의 형태를 살려 조리한 음식을 제공한다는 데 있다. 셰프들 특유의 깐깐함도 위생 문제에 믿음을 실어준다.


가정집의 음식물 재활용은 대개 비위생적인 일로 치부되지 않는다. 가정집의 음식물은 요리 당사자나 그의 지인들이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집에서 음식물을 재활용하는 일로 문제가 생기는 일은 드물다. 아이들에겐 싱싱한 음식을 주고 나ㅡ대개 아이의 아빠ㅡ에겐 오래된 음식을 준다는 푸념도 들리지만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부당한 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버리기 아까워서 누군가 먹어야 하는 음식을 아이에게 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평등'을 들이밀며 '너도 먹어야 한다' 하고 주장하면 지나치게 자존심에 집착하는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요리하는 주부 대부분은 아이가 남긴 음식을 자발적으로 먹고 있다. 만일 어떤 가정집에 신선한 재료가 있음에도 오래된 재료를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계속 먹이고 있다면 음식 이야기는 잠시 미뤄 두도록 하자. 더욱 심각한 다른 문제가 있을 테니까.



2.

이번 콩포트는 '중고' 재료를 써서 만들었다. 지난번에 아펠 슈트루델을 만들고 남은 속재료가 있어 그것을 썼다. 우선 설탕을 절인 속재료에서 나온 과즙과 화이트 와인을 한데 담아 섞고 불을 높여 끓였다. 액체가 상당량 증발하자 남아 있던 과일 전부와 물을 조금 부어 섞은 뒤 불을 줄여 천천히 졸였다. 이미 향신료가 배어들어 있던 속재료라 수월하게 만들 수 있었다.



  1. 참고자료: 파트릭 랑부르 <프랑스 미식과 요리의 역사> 김옥진, 박유형 옮김 (경북대학교 출판부, 2017)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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