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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변화, 집에서 만드는 데미글라스 소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2. 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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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토냉 카렘은 <19세기 프랑스 요리 예술>(1833)에서 조리법에 고유 명칭을 부여하며 프랑스 요리에 하나의 체계를 세웠다. 가장 유명한 것이 4대 소스일 것이다. 그는 소스를 크게 4가지로 분류했는데, 갈색 육수에 루를 넣어 걸쭉하게 만든 불그스름한 색의 에스파뇰, 하얀 육수에 루를 넣은 블루테, 블루테에 노른자를 첨가한 알망드, 블루테에 크림을 섞은 베샤멜이 바로 그것이다. 


전통적인 데미글라스는 기본 소스인 에스파뇰로 만든다. 앙토냉 카렘과 에스코피에가 정립해 놓은 전통에 따라 데미글라스 소스를 만들자면 먼저 브라운 스톡과 에스파뇰을 각각 만든 뒤 브라운 스톡과 에스파뇰을 반씩 섞고 와인 등을 추가한 뒤 졸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침 식사. 데미글라스 소스를 뿌린 오믈렛. 2020. 2.11.



이번에 데미글라스를 만들 때 브라운 스톡과 에스파뇰을 각각 만든 후 섞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았다. 브라운 스톡과 에스파놀을 따로 만들면 데미글라스를 만들 때 비슷한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데, 내가 필요한 것은 데미글라스뿐이었므로 굳이 비슷한 작업을 두 번 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브라운 스톡과 에스파뇰을 한번에 만들어 섞는 방법을 썼다. 그러면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루(roux)도 사용하지 않았다. 루는 밀가루를 이용해 만드는데, 전통적 방식을 따르자면 에스파뇰을 만들 때 브라운 루를 넣어야 한다. 이 역시 거장이 정립해 놓은 방식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간혹 에스파뇰에 루를 넣으면 '전통' 데미글라스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루를 넣어야 전통 방식이다.


그런데 꼭 옛 방식을 따라야 할까? 전통을 중시하는 중세풍의 프렌치 레스토랑이 아니라면 과거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가정에서 만드는 데미글라스라면 말할 것도 없다. 사실 이런 간략화가 일반화된 지 오래다. 미쉐린 스타 3개를 받은 프랑스의 전설적 셰프 올리베르는 시청자가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도록 오트 퀴진을 간소화한 바 있다. 누벨 퀴진 운동에서도 밀가루와 루의 배제는 언제나 화두였다. 에스파뇰과 데미글라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이미 프랑스에서는 앙드레 기요가 "1947년 이후에 소스에 루를 넣은 적이 없다"라고 선언할 정도였다. 루를 넣는 대신 소스를 계속 졸여서 걸쭉하게 만들었다. 


전통 에스파뇰이나 데미글라스를 추구하는 곳도 있겠지만 점차 과거의 것이 되어 가고 있다. 감각 있는 셰프라면 저칼로리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와 가벼움을 위해서라도 음식에 루와 버터를 듬뿍 넣지는 않을 것이다. 만드는 데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무거운 갈색 소스는 퇴출 위기에 놓여 있으며 특히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그런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



2.

데미글라스는ㅡ자주 혼동되는 쥬(jus)와는 다르게ㅡ스톡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스톡을 잘 만들면 만들수록 좋은 데미글라스가 나온다. 그러니 어떻게 보면 데미글라스도 프랑스 요리의 핵심 요소인 퐁 드 퀴진, 즉 육수의 일부라 할 수 있다. 비프 스톡을 잘 만들 줄 안다면 데미글라스는 어려운 소스가 아니다. 단지 만드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다.


이번에 스톡을 만들 때 '우족'이라고 부르는 소의 다리 부위를 썼다. 마침 코스트코에서 우족을 판매하고 있어서 구매했다. 이 부위가 종아리뼈와 더불어 스톡을 만들 때 상당히 좋다. 이런 관절 부위에 젤라틴을 내놓는 콜라겐이 많이 함유되어 있어 스톡으로 끓이기에 좋다. 또 뼈에 살이 제법 붙어 있어 캐러멜라이즈 하기에도 편하다. 


보통 스톡을 끓이는 데에만 8시간 넘게 소비해야 하지만 가정집에서 그렇게 하기는 쉽지 않다. 난 데미글라스까지 세 번 졸이는 데 만족했다. 그 정도로도 충분하다. 작업 시간은 재료 준비와 설거지 포함, 총 9시간이었다. 영상에는 스톡을 졸이는 과정과 레드 와인을 넣는 장면이 생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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