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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야누스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20. 1. 15.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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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이전 에트루리아' 전을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을 때였다. 큐레이터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야누스가 보였다. 큐레이터는 야누스를 가리키며 한쪽은 노인, 한쪽은 젊은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간단히 말하고는 지나쳤다. 간단하지만 중요한 사실이었다. 많은 야누스 상이 남아 있지만 젊은이와 노인이 대비를 이루고 있는 야누스 상은 흔한 편이 아니었으니 그렇게 언급할 만했다. 하지만 그건 해설을 듣지 않더라도 두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다.


야누스는 얼굴이 두 개라 동시에 여러 곳을 볼 수 있고 야누아(Janua, 문)를 지키는 신이기도 했으니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그를 수호신으로 숭상했다. 근래에는 얼굴이 두 개라는 점에서 이중인격을 야누스에 비유하기도 했다. 원뜻에서 벗어났지만 나쁜 비유라고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야누스 하면 문, 시작, 양면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상징이 있으니 그건 시간을 가리키는 야누스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야누스(Janus)는 1월(January)의 어원이다. 건물 내부로 들어가려면 우선 문을 열어야 하니 그는 문지기 신인 동시에 시작의 신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하였을 때, 첫 교류가 일어났을 때 '문을 연다'는 비유를 사용한다. 지금도 우리는 '마음의 문'이나 '시작의 문'을 연다. 이런 시작이라는 상징성이 1년의 첫 달에 그의 이름을 남겼다. 


시간의 상징성 때문인지 이처럼 나이대가 달라 보이는 야누스 상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수염의 유무는 연령의 대조를 드러냈다. 이처럼 한쪽은 젊고 한쪽은 나이들었을 때 우리는 시간의 흐름을 떠올리게 된다. 


야누스의 한쪽 얼굴에 수염이 없는 건 어쩌면 면도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면도를 했다. 콘스탄티누스 이후 5세기에 이르는 로마의 기독교 황제들도 면도를 했으니 이를 남아 있는 문서와 두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수염의 대조를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각가는 야누스의 수염으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야누스의 한쪽 얼굴은 과거, 다른 한쪽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과거이고 어느 쪽이 미래일까? 젊은 쪽이 과거이고 나이든 쪽이 미래에 해당하겠다. 하지만 아주 어린 사람에게는 모두가 미래의 모습일 것이고 아주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모두가 과거의 얼굴일 것이다.


야누스를 마주하고 내가 생각한 건 그런 것이었다. 시간을 상징하는 두 얼굴의 야누스가 한 얼굴로는 과거를, 다른 얼굴로는 미래를 보고 있다. 만일 이 두 얼굴을 각각 젊은이와 노인으로 표현되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나이에 따라 다른 것을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고고학자와 역사가, 그리고 우리가 저 둘을 젊은이와 노인으로 구분했던 건 그저 관찰자들이 젊은이도 아니고 노인도 아닌 한창때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약 2,400여 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에서 젊은이와 노인의 성격을 양극단으로 묘사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젊은이는 지나치게 자신감에 넘치고 고매한 것만을 좋아하며 계산을 멀리하고 잘 속는다. 반면 노인은 지나치게 소심하고 이익만을 추구하며 인색하고 남을 불신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극단적인 이분법 사이에 둘 사이에서 중용을 추구하는 '한창때'의 사람들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야누스를 바라보며 내가 그 사이에 있다고 믿고 싶어했다. 시간은 아직 나의 편이라고, 나는 순진하지도, 매사에 의심스럽지도 않다고. 난 내가 그렇게 양극단의 중간에 서 있다고 꿈꾸고 상상하고 믿었으며 그 사이에서 두 얼굴을 구분하고 평가하고 위로했다.


야누스. 1세기, 대리석,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2019.10.25.


야누스. 1세기, 대리석,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2019.10.25.


야누스. 1세기, 대리석, 구아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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