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뷔슈 드 노엘, 정화의 불꽃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12. 25. 00:53

본문

1.

프랑스 문화권의 성탄절 기념 케이크인 '뷔슈 드 노엘(Bûche de noël)'을 만들었다. 뷔슈 드 노엘을 번역하면 '크리스마스 장작'으로, 케이크가 장작으로 쓰이는 통나무처럼 생겼다. 기원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고대 유럽인들이 동지나 크리스마스 즈음에 되도록 오래 탈 수 있는 커다란 통나무를 태우며 액운을 물리치려 했다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기독교가 퍼지기 이전의 다신교 제례에는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신에게 통나무를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있었는데, 이때 고대 유럽인들은 통나무가 난로에서 오래 탈수록 좋다고 믿었다. 장작이 새해가 올 때까지 탈 수 있으면 가장 좋았고, 못해도 3일은 탈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되도록 커다란 통나무를 장작으로 썼다. 잉걸불은 악령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계속 놔두었고, 타고 남은 재는 거름으로 썼다. 지금의 우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불을 피우기가 힘들었고 불씨 보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시기의 사람들은 집의 한가운데에 화덕을 놓고 그를 중심으로 생활해야만 했으니, 해가 좀처럼 나지 않는 깊은 밤의 한겨울에 가족들을 한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그 불꽃에서 위안을 얻는 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2.

예로부터 불꽃은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사악한 것을 없애는 정화의 상징으로 쓰였다. 풍년을 점치는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우리나라엔 대표적으로 달집태우기가 있다. 한겨울에 무언가를 태우며 악귀를 물리치려 했다는 점에서 유럽의 '통나무 태우기'와 비슷한 면이 있다. 달집이 잘 타면 풍년이 오고 도중에 꺼지면 흉년이 든다고 점치기도 했으니 이것 역시 서로간에 유사한 성격이라 할 수 있다. 태우는 시기는 달랐는데, 태양의 움직임을 중시한 유럽에서는 동지 즈음에 장작을 태웠고, 달의 운행을 중시한 우리나라에서는 정월대보름에 볏단을 태웠다.



3.

풍년을 기원하며 태우던 통나무가 난로가 사라지며 이제 식탁에 올라오게 되었다. 레시피는 워낙 다양하여 특정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기본을 스펀지 케이크에 두고 만들면 크게 어렵지 않다. 겉모습은 통나무처럼 보이기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통나무이므로 기본적으로 원통형이 많으나 통나무를 반으로 쪼갠 것 같은 형상도 있고 가지를 여러 개 붙인 것도 있다. 노각나무처럼 수피가 벗겨진 것을 형상화한 높은 수준의 뷔슈 드 노엘도 있다. 역시 가장 기본은 나이테를 나타낼 수 있는 스위스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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