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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7) - 카페 그곶, 마치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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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와 이름난 여러 카페들을 돌아다녔다. 그들 중 어떤 곳은 단순히 음료를 팔았고 어떤 곳은 인테리어를 팔았다. 어떤 곳은 앞바다를, 또 어떤 곳은 분위기를 팔았다. 그들은 똑같은 카페라는 이름을 달았지만 부랑과 유랑의 차이처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어떤 곳에서 커피란 시설이용료의 다른 이름이었고 식사 후의 입가심이었으며 사진을 위한 그럴 듯한 이미지였다. 커피의 맛과 카페의 분위기, 주변 풍경과의 어우러짐, 그리고 그에 향응하는 손님들의 격식. 이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곳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와 비슷한 카페를 아내의 도움으로 만날 수 있었다. 카페 그곶. 난 '그곶'에서도 카페라테를 주문했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리고 가끔씩 그곶의 두 주인을 바라보았다. 시를 읽고 커피를 볶고 내리며 건축 예술을 이해하는 데다가 손님들에게 일정한 예의, 혹은 분위기를 유지해 줄 것을 부탁하는 젊은 주인 내외는 내 주의를 끌었다. 그들이 매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고 싶었다. 별 다를 건 없었다. 그들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쭈그린 채 노트북을 이용하거나 벽에 기댄 채 휴대전화를 들여다 보았다. 
 
기대 이하인가? 그들이 틈틈이 종이책을 읽거나 오래된 LP판을 뒤적이지 않아서? 모든 것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마치 꼭 그래야만 할 것 같다. 철학자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멀리해야 할 것 같고 시인은 살이 쪄서는 안 될 것 같다. 아름다운 피부에는 털이 있으면 안 될 것 같고 푸른 바다에는 작은 배설물이라도 가라앉아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SNS에 행복한 사진을 올리는 사람은 그 순간만이 아니라 항상 행복한 사람이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일시적 행복을 자랑하려는 사람인 것만 같다. 행복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거라면 그 행복도 실은 거짓일 것만 같다. 그렇게 불행 하나에 두려움이 일었다. 그 불행이 또 다시 벌어질까 봐. 행복 하나에도 두려움이 일었다. 그 행복이 거짓으로 드러날까 봐. 
 
카페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주인 내외의 모습 한 컷. 누구에게나 같은 장면이지만 누구에게는 그토록 다른 것들.
 

 

 

 

 

카페 그곶. 마지막 사진은 나와 딸을 촬영한 아내의 작품. 2017.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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