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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 (13) - 해변과 해안 (2) (세화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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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시동이 걸림과 동시에 네비게이션이 동작했고, 난 네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을 요량으로 아내가 가고자 했던 곳의 위치를 물었다. 아내가 어느 해변이라고 대답을 해주었는데 확신이 생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모음이 'ㅏㅣ'야, 아니면 'ㅓㅣ'야?"

난 적이 'ㅏㅣ'라는 가정을 하고 물은 말이었다. 하지만 아내의 대답은 뜻밖에도 'ㅓㅣ', 즉 '세화'였다. 그 해변의 이름이 '새와'도 아니고 '새화'도 아닌 '세화'라는 걸 알았을 때, 난 유곽이 성곽과 비슷한 말이 아닐 뿐 아니라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처럼 놀랐다. 세화해변. 그 이름은 제주도의 다른 해변과 무척 다르게 느껴졌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태어난 아이처럼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세화해변으로 차를 몰았다. 막 태어나려는 아이가 지금 당장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머리를 내밀어야 할 방향뿐인 것처럼. 난 그 근처의 유명한 커피숍도, 바다의 특징도, 아내가 왜 그곳에 가려하는 것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난 그저 차를 몰았다. 당시엔 그것이 내게 주어진 단 하나의 임무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난 세화포구 근처에 있던 녹슨 철골 건물을 보고 "옆에 웬 폐허 같은 건물이 있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그곳이 오일장이 열리곤 하는 건물이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한 채. 아내는 다소 당황한 듯한 기색으로 답했다.

"저곳이 오일장이 열리는 곳이야."
"그래?"

운전을 하는 통에 그곳을 자세히 바라볼 수는 없었다. '저런 음침한 곳에서 오일장이 열린다니.' 난 다소 의외라는 생각을 하며 차를 잠시 세화포구 옆 방파제 부근에 댔다.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내가 차를 정차시킨 지점은 매주 토요일마다 벨롱장이 열리는 곳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아내는 내게 몇 번 지나가듯이 벨롱장에 대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벨롱'이 제주어로 별이 반짝이는 걸 뜻한데."

난 단어를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지만 묻지 않았다. 단어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었으므로. 그래서 꽤 오랫동안, '벨롱장'은 내게 '벨 농장'으로 기억되고 말았다. '아아, 농장이라니. 야채류를 파는 간이 시장 같은 건가.' 난 속으로 생각했다.

때때로 단어는 그렇게, 한 번에 알아듣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대단찮게 생각했다. 단어들간의 약간의 차이가 완전히 다른 생각이 들도록 나를 변모시킬 수 있다는 것에 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소심한 책방'을 '수상한 책방'으로 알아듣던 그때처럼.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니, 어느새 세화해변은 우리가 가장 빈번하게 찾아간 곳이 되어 있었다. 제주도에 오기 전엔, 아니 도착한 이후로도 한동안 난 이름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곳이었는데도. 난 헤드기어를 쓰고 링 위에 올랐다. 링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아는 것이라곤 링에 서 있는 시간이 우리 삶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 것이라는 확신과 종이 울리는 시간뿐이었다. 난 링 위에서 뛰다 말고 고개를 돌려 링 밖의 코치에게 헉헉거리며 묻곤 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야?" 아이를 업은 코치는 "이십초 남았어."라고 대답했다. 혹시 내가 '십초'를 잘못 들은 건 아닌지 묻고 싶어지던 찰나, 그녀가 내게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

어느날 세화해변을 걸으며 아내에게 물었다.

"저기에서 사진 찍고 있는 사람들, 포즈가 모두 똑같은 거 알아?"

난 바닷물이 도로 위로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해변을 따라 길게 세워둔 둑을 가리켰다. 그 둑 위에 조화가 담긴 꽃병이 하나 있었고, 그 양 옆으로 의자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냥 봐도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그 의자에 앉기 위해 줄을 섰고, 자신의 차례가 되면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었다.

"저렇게 찍으면 예쁘게 나오니까 다들 비슷한 포즈를 취하는 거지."

아내는 내가 질문한 의도를 알아챈 듯했다. 아내의 대답에는 세상을 향한 나의 날선 시각을 경계하려는 낌새가 서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사진의 구도도 가만 보면 다들 비슷했다. 바다를 찍을 때는 하늘과 땅을 비슷한 비율로, 피사체는 정중앙이 아니라 좌우로 약간 비껴서. 비슷한 구도엔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비슷해 보이는 것들에도 차이가 있었다. 그들이 취하고 있는 자세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깨의 움츠림이, 주먹의 모습이, 발을 벌리고 앉은 정도가 달랐다. 옷과 머리칼의 꾸밈은 더욱더 달랐다. 사진사의 구령에 맞춰 손가락을 하나 더 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다 특별해짐을 느낀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는 해변은 다 비슷하게 생겼으니 다른 곳엔 가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인생은 전부 거기서 거기이니 남들처럼 살라는 말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함께 앞을 향해 걸었다.

며칠 뒤, 사람 하나 보이지 않던 그 거대한 철조 건물에서 오일장이 열렸다. 평소에는 음산하던 공간이 특정한 어느 시기가 되니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곳은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변모했다. 운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때로 정해진 약속을 멀리하곤 했다. 그들은 인위적인 것을 사소하다고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서로간의 약속이 없었다면 세상 곳곳에 흩어져 사는 우리들은 오직 우연이라는 가혹한 가능성에 기댄 채 외롭고 척박하게 살아가야 했을 것이다. 물론 정해진 약속에도 때론 불청객이 찾아왔다. 궂은 날씨만 아니었다면 이미 물건들을 다 팔아치웠을 거라는 문어 장수의 푸념은 오일장이라는 약속에도 실패가 있을 수 있음을 알린다. 그래도, 앞날을 예고하기 어려운 날씨의 지배 하에서도 우리는 약속한 날이면 좌판을 늘어놓아야 하는 것이다. 약속한 시간에 밀물과 썰물이 오갔고 별이 뜨고 내렸으며 사람들의 만남이 바다 위를 오르내렸던 어제와 오늘의 일처럼.

제주 세화해변. 2017. 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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