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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기행(12) - 여성, 서점, 책, 그리고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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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그것은 제주도에 많다고 여겨지는 것 중 하나였다. 과연 그랬다. 오래전 숙명여대를 가로질러 걸어가던 그때가 다시 기억날 만큼 이곳엔 여자, 그것도 젊은 여자들이 많았다. 이것을 관심 있는 것만 기억하고 그렇지 않은 건 잊어버리는 선택적 기억 현상이라고 섣불리 진단할 필요는 없다. 남녀로 구성된 연인을 제외한다면 단체로 다니든 홀로 다니든 지금까지 내가 찾아갔던 모든 곳에서 남성보다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건 객관적으로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어제 찾아갔던 세화해변의 '벨롱장'은 상당히 많은 인파로 붐볐는데, 100명이 있다면 그중 80명을 여자로 간주해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물건을 팔러 나온 '상인'들의 대다수도 3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었다.


그렇다면 그 많은 남자들은 모두 어디에 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때로 자문을 해보았다. "군대에 가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남자들이 군대 가 있는 동안 여자들은 시간적으로 여유로우니까." 아내는 젊은 나이에 군대에 가야만 하는 일반 남성들의 입장을 구조적으로 헤아리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다. "글쎄, 남자들은 늘 피곤해서 집에 누워 있고 싶은 건지도 모르지. 보통 관심의 대상이 다르기도 하고" 나는 평가의 상대적인 균형을 맞추기 위해 개인의 문제를 언급했다. 난 우리의 대답이 얼마든지 반대의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잠시간 침묵을 유지한 채 푸른 바다와 길가의 카페와 산뜻한 차림의 인파들 사이 어딘가로 미지의 대답을 날려 보냈다.

언젠가 서점을 연 사람이 쓴 작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서점 주인의 인터뷰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서점 주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서점에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이에요. 남자들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되요." 인터뷰어는 왜 그런 것 같느냐고 물었고, 서점 주인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어찌 본인의 생각이 없었겠느냐만, 논란을 피하기 위한 현명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꼭 그 서점 주인의 말이 아니더라도, 여러 조사에 따르면 서점을 방문하는 일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비율에서도 여성이 남성을 여유 있게 앞지르곤 했다.

내가 제주도에 와서 방문했던 두 곳의 서점인 '소심한 책방'과 '만춘서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점 주인도 모두 여성이요, 찾아오는 사람들도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래서 서점들은 여성 손님들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아주 작은 규모의 대지에 쌓아 올린 작은 책방이었지만 갖출 것은 갖춘 곳. 작은 테이블과 커피 머신만 있다면 카페라고 해도 좋을 그런 분위기가 있는 곳. 하지만 어쨌거나 서점은 서점이니 책이 팔려야 할 터였다. 난 책의 목록들을 쭉 살펴 보았다. 여기에 꽂혀 있는 이런 책들이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책들일 거라고 난 지레짐작했다. 여성들이 많이 찾는 곳에 남성들이 선호하는 책을 선정해서 납품해 봐야 먼지만 쌓일 터이니 말이다. '소심한 책방'은 상대적으로 따뜻한 그림책과 펜시류가 많았고 '만춘서점'은 상대적으로 좀 더 무게감 있는, 순수문학에 속한 소설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소심한 책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난 그 이름을 바로 외우지 못했다. 내가 다음에 그 서점을 언급할 때면 그 이름은 '심심한 책방'이나 '사소한 책방', 심지어 '수상한 책방'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상한 책방이라고?" 아내는 내 말에 황당하다는 듯 웃어댔다. "응,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드는 책방이야." 난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수상한'이 '소심한'이라고 명확히 바뀐 것은 그 서점을 방문하고 난 이후였다. 그곳은 생각보다  수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왜 소심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책방이 작아서 소심하다고 한 것일까? 하지만 '소심한 책방'은 '만춘서점'에 비하며 커다란 곳이었다. 삼각형의 작은 형태로 구성된 '만춘서점'에 비하면 '소심한 책방'은 내부에 응접실과 화장실까지 갖춘 궁궐 같은 곳이었다. 어쨌거나 소심하다는 게 잘못된 말이 되기는 어려울 듯했다. '소심한'이라는 단어는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인을 제외한다면 인간은 누구나 소심하다. 심지어 대외적으로 대범함을 자부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한 부분에서만큼은 소심한 면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사람을 인류가 수십 세기를 거쳐 오며 낳았던 아주 몇 안 되는 성인 중 한 명의 반열에 포함시켜도 별 문제가 없으리라.

'소심한 책방'에서는 마땅히 살 책을 고르지 못했지만 만춘서점에서는 두 권의 책을 샀다. 카페 '미엘 드 세화'의 잔디밭에서 <달콤한 나의 도시>를 단돈 천원에 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앞으로 책을 더 사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잖아도 이미 수중에 몇 권의 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춘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읽는 순간 난 운명적으로(이 정도 표현은 해주어야 집에 엄청난 양의 책을 놔두고 또 책을 구입하려 하는 것에 대한 핑계거리가 된다) 이것을 소유해야만 한다는 현대인의 착각에 빠져 들었다. 책 이름은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였다. 대범하게도 '내가'가 아니라 '네가'였다. "이거 당신한테 내가 선물로 주면 어떨까?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농담은 잘 통하지 않은 듯했다.

오늘은 날이 흐린 일요일이었다. 유채꽃 축제가 오늘까지라고 하여 가볼까 했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집에 머물렀다. 그래서 이번에 산 책을 읽었다. 절반 정도 읽은 <달콤한 나의 도시>를 덮어둔 채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를 손에 들었다. 읽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아이가 울며 보채기 시작했다. 난 아기띠로 아이를 안은 채 거실을 돌아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 사이 아내는 부엌에서 딸기잼을 만들었다. 딸기잼 향기가 실내에 가득 퍼졌다. 

소심한 책방. 2017. 4. 4.
만춘서점. 삼각형의 자투리땅이 아닌 데도 건물을 삼각기둥 형태로 세웠다. 독특한 형태에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2017.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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