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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 기억의 고고학

우아하고 감상적인 산책로/익숙한 길

by solutus 2016. 12. 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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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의 내가 아니다. 우리의 많은 부분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무기력과 눈물뿐

ㅡ우고 포스콜로



우리가 어떤 장소와 연관된 비극을 기억하고 당시의 장면을 떠올리며 애통한 감정을 느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얼핏 당연한 주장처럼 들린다. 그러나 강렬하지만 오래가지 않는 것이 비극의 속성이다. 바닷물에 씻기든 화산재에 묻히든 사건들은 시야에서 사라지기 마련이니, 그리하여 기억에서도 곧 잊혀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라센족은 물론 노르만족의 침입과 프랑스인의 나폴리 약탈에 흘러 넘쳤을 그들의 피가 항구의 바위 위에 남아 사람들을 그때의 비극으로 끊임없이 일깨웠으리라. 어쩌면 그랬더라면 사람들이 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걸 피할 수 있었을까. 오늘도 자연은 과거의 모든 것을 거두어 가 그것을 새 탄생의 거름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괴테가 폼페이를 가리켜 후손에게 큰 즐거움을 준 재앙이라고 한 것에 윤리의 잣대를 대지 않도록 하자. 괴테뿐이겠는가. 폼페이를 방문한 어느 누구도 그때의 비극으로 얼굴에 비통을 드러내지 않는다. 날씨는 화창하고 나무는 푸르르며 길은 잘 정돈되어 있다. 그 속에서 화산재가 도시를 잠재우던 당시의 공포를 더듬어 보기란 쉽지 않다. 석고 캐스트로 재생된 폼페이 시민들의 고통어린 몸짓을 보게 될 때에야 사람들은 숙연해진다. 그러나 그 기분도 바실리카와 신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거대한 포룸이 이르면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는 고대의 회화처럼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극심한 애통보다는 "이상하고 반쯤 언짢은 인상"을 담아 두는 것이 독일의 대문호와 다를 바 없은 우리들의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때로 기억은 천천히 잊히는 대신 점점 고통스럽게 변하기도 했다. 인간에게는 파헤치려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땅을 파헤치다 1,700년 전 유적의 흔적을 발견한 인부들처럼 우리는 오래 덮혀 있었던 어떤 우연한 기억을 우리의 머릿속에 되살려 놓으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적인 고고학자가 아니다. 우리는 고고학적 발굴을 알지 못하고, 따라서 기억을 파헤치는 손길은 거칠고 서툴다. 불행한 기억일수록 움직임은 더 다급한 법이니 그 서투름은 급기야 기억의 유적에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리하여 우리가 애써 되살린 과거의 기억은 아픔의 잔해를 더 잔인하게 늘어 놓아, 그 기억 속 인물들을 보다 나쁜 역으로 몰아 넣는다. 이제 우리는 손에 얼굴을 묻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린다. 하지만 당신에게 손을 내밀지도, 움직이지 않는다. 위협을 가볍게 생각했던 옛 폼페이인들처럼 우리의 머리 위로 뿌연 재가 쌓여가는 걸 의식하지 않은 채. 그러므로 이 유적을 기리며 깨달아야 했다. 곧 우리 육체의 텅 빈 공간으로 쏟아질 회색의 반죽이 하나의, 되돌릴 수 없는 굳어진 기억으로 당신 앞에 남게 되리라는 것을.


폼페이 유적. 이탈리아 캄파니아주, 2015. 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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