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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름다운 에고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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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하철보다는 버스를 타는 걸 더 좋아했다. 버스는 지하철에 비해 자주 흔들거렸고 비좁았으며 특유의 기름 냄새가 날 때도 있었지만, 대신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지하철의 어둡고 습해보이는 벽은 보기에 좋지 않았고, 그래서 지하철에 탈 때면 난 눈을 창밖이 아닌 다른 곳에 두어야만 했다. 그 다른 곳엔 호기심을 가질 만한 것이 없었고, 따라서 우연히 보게 된 어떤 것에 다시 한 번 눈길을 줄 일이라곤 일어나지 않았다.


경의중앙선은 좀 달랐다. 경의중앙선은 다른 대부분의 지하철 노선에선 느낄 수 없던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을 실은 채 고집스럽게 밀고 들어오는 단조로운 소음이 또 한 무리의 사람을 잡아끌며 사라지는 것엔 다를 바가 없었다. 예기치 않았던 것은, 시선을 책이나 휴대전화에 두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을 때 익숙한 체험으로 무뎌져 있던 무채색의 텁텁한 어둠 대신 날 따라오던 다채로운 광경이었다.


그건 마치 바다처럼 보이던 거대한 한강일 때도 있었고, 잿빛으로 채워진 한글 박물관일 때도 있었다. 길이 꽉 막힌 강변북로에 차량들이 답답하게 늘어선 광경일 때도 있었고, 자신들의 발 아래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운 채 초조하게 지하철을 기다리던 역사 내 사람들일 때도 있었다.


그런 것들을 보고 있자면 강변북로의 차량 틈에 끼여 있던 운전석의 나, 빠른 속도로 강변북로를 스쳐 지나가던 경의중앙선의 지하철, 그리고 그 지하철을 부러운 눈으로 쫓던 내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이촌역이 보일 때는 그 근방에서 길을 잃어 헤매던 아내와 내 모습도 생각났다. 


그리고 다른 장면들 역시 졸음에서 깨어나듯 내 기억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건 지하철 문에 기댄 채 '품질계획과 취업전략'이라는 책을 손으로 꼭 붙잡고 있던 대학교 신입생들의 문제가 아니었고, 노약자석마다 앉아있던 수많은 노인들의 복지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입을 가리지 않은 채 앞좌석의 사람에게 기침을 계속 해대던 한 승객에 관한 것도, 기찻길 옆으로 드문드문 보이는 판잣집 사람들의 생계에 관한 문제도,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숨진 19살의 젊은 노동자에 관한 것도,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격리한 채 혹시 다른 승객과 눈이라도 마주칠까 고민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잠재적 공포에 관한 것도 아니었다.


난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뿐만이 아니었다. 지하철은 그런 것들을 싣고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지하철에 그런 사물은 없다. 지하철 밖의 그들은 그저 풍경일 뿐이었는데, 풍경이란 멀리서 보이는 것, 금세 스쳐지나가 아련해지는 것을 일컫는 법이었다. 풍경이란 멀리서 지켜볼 때 아름다운 것이니 가까이 다가갈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지하철은 바깥 풍경으로부터 자신을 가둔 채 그 커다랗고 긴 몸집을 일정한 속도로 유지했다. 그 안의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이 낯선 타향 사람들을 경계하는 것 이상으로 출입금지라는 마음의 이정표를 세웠다. 난 그 안에서 무언가에 홀린 듯, 마치 어떤 아름다운 것을 감상하듯 창밖을 바라보았다. 홀로 짧은 기차 여행을 하는 듯했고, 그 감상적 분위기에 도취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몰리는 구간도 있는 법이었다. 기차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자 서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던 공간이 비좁아지기 시작했다. 창이 가려지고, 그리하여 그나마 보이던 풍경도 이젠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제 가벼운 여행의 기분에서 노곤한 일상의 감정으로 추락해버린 듯했다. 그러나 난 몇 정거장만 더 가면 내릴 참이었다. 이 억척스럽고 침범의 위협으로 가득찬 공간에서의 해방. 난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곤 불행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된, 지하철에서의 그 아름다운 풍경에 다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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