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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다양한 이름의 아야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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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한 첫 단계는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것이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한창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자신의 이름을 말한 뒤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에서 한 단계 혹은 그 이상 나아가고 싶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남들이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사물에도 자신만의 고유명사를 붙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만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감동받기도 한다. 그래서 그 이름을 정확히 알고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따라서 아야 소피아 박물관과 나의 관계는 순탄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난 이 박물관을 아야 소피아 박물관이라고도 부르고 아야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불렀으며, 때론 성 소피아 성당이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라고도 불렀기 때문이다.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관계는 그렇게 틀어지기 시작해서, 내가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닌 듯했다.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에 급하게 만들어졌던 탓에 여전히 보수가 진행 중인 돔, 성상파괴운동 이후로 파괴와 복구가 반복되었던 벽화, 키블라를 가리키게 하느라 정중앙에 맞지 않게 한쪽으로 쏠려버린 미흐랍, 아군이라 생각했던 십자군 동료들에게 오히려 약탈당했던 이 건축물의 복잡다난한 역사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관광객의 감정마저 뒤흔들어버린 듯했다. 훗날 갤러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될 2층의 아케이드와 앱스의 황금 이콘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표정은 어두운 실내 탓인지, 혹은 이 고통스러운 역사의 영향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바쁜 일정과 너무 많은 관광객들에 치인 탓인지, 사진을 찍고 난 이후엔 곧장 무표정하게 변해버렸다. 이 장소를 그렇게 비참하게만 바라보는 건 무례한 짓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왜소하기에, 천 년 넘게 들어서 있는 이 놀라운 건축물에 안에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자거나, 유명하다더니 별것 없네, 하는 관광객들의 말은 그들만의 탓이 아니다. 우린 가끔 위대함에 압도당했으면서도 그걸 인정하기 싫어 다른 소리를 내곤 한다.

 

그러니 우리가 아기 예수를 안은 채 권좌에 앉아 있는 성모의 황금 모자이크 벽화를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동행자의 모습을 계속 쫒았던 것을 이해하도록 하자. 특히 그처럼 마음이 불안한 상태였다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니,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쉽게 사라져버릴까 항상 불안해 하는 존재인 탓이다. 따라서 천상의 그리스도 혹은 알라가 현시할 미래의 그 어떤 날에도, 어쩌면 우리는 감히 신에게서 눈을 뗀 채 서로를 바라보려 할지 모른다. 그러나 신이 진정 위대하다면 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다. 사람은 반쪽으로 태어나 하나가 되길 염원하니, 신은 이미 그 모든 걸 아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복잡한 박물관 안을 무관심한 듯 서로 떨어져 걸었으면서도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고, 그 순간의 충만한 감정에 압도당하여 서로 이끌렸음에도 다른 평범한 관광객들이 그렇듯 그걸 인정하기 싫어 다른 소리를 냈다.

 

다시 만난 우리는 돌아다니는 종종 이런저런 이름을 묻고 답했다. 모자이크의 저 사람은 누구야? 저 천사의 이름은 이렇데. 그렇게 우리는 성당이었으며 모스크이기도 했던 '성스러운 지혜'에 조금씩 다가갔다. 누군들 그러하지 않을까. 이리 와서 이것 좀 봐요. 그녀가 손짓하며 속삭이고 당신은 끌리듯 다가간다. 그리고 그 순간, 역경을 견디며 우뚝 서 있는 아야 소피아가 당신들의 인생과 꼭 닮았다는 걸 발견한다. 당신은 그녀 옆에 다가가 선다. 그리곤 당신이 언젠가 그녀에게 던졌을 물음을 다시 한 번 던져 본다. 이름이 뭔가요? 모든 관계는 이름을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이름은 그때보다 나이들어 있지만 그때보다 더 깊어져 있다. 따라서 그 물음에 답하는 그녀의 대답이 그들의 첫 대면 때와 같지 않으리라고 난 맹세할 수 있다. 

 

성모와 아기 예수가 아야 소피아 박물관의 나르텍스를 은은하게 내려다 보고 있다. 그 시선이, 손을 꼭 잡은 채 나르텍스를 천천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어깨 위에 부드럽게 내려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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