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밤길을 걷다

본문

저녁에 비가 왔었다. 난 지금도 비가 오는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우산을 들고 나왔다. 비는 오지 않았다. 단지 저녁에는 들리지 않았던 매미 울음소리만이 밤의 고요를 깨고 있었다. 왜일까. 비가 멈춘 밤의 울음소리는 더욱 도드리지는 것 같다. 낮에 우는 그들의 소리와 밤에 우는 그들의 소리는 다르게 다가온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과 '자신의 외로움을 위로해 줄'의 차이처럼.

난 곧 마실 커피를 생각한다. 그걸 마시면 오늘 벌써 다섯 잔째라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하지만 난 그 커피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걱정되진 않는다. 커피 때문에 잠을 못 잔 적은 없었으니까. 아니, 실은 잠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처음에는 불편했던 화장실용 슬리퍼가 이젠 편하게 느껴진다. 신발 바닥에 돋힌 지압용 돌기들이 이젠 전혀 아프지가 않다. 이젠 그 신발을 일부러 신고 다닌다. 고통도 익숙해지면 마치 중독이나 되는 것처럼 그리워지는 것일까. 어쩌면 그 고통을 참기 위해 쏟아낸 어떤 분비물에 중독된 것일지도 모른다. 바닥을 때리는 달가닥 소리가 지나가는 타이어의 마찰음에 묻힌다. 난 어둠을 없애고자 하는 자동차의 전조등과 물웅덩이를 피해 길을 건넜다.

점포 위의 천막에 고여 있던 물방울들이 자신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후드득 떨어지고 있었다. '무게를 이지지 못해'에서 잠깐 멈칫. 어떤 이들은 보행로에 떨어져 틱틱 소리를 냈고 어떤 이들은 깨진 구덩이 속에 괴진 물웅덩이로 떨어져 퐁퐁 소리를 냈다. 아, 마치 음악소리 같아. 난 그 아래를 지나며 그들의 낙하를 방해한다.

오늘은 8월 30일. 곧 있으면 9월이다. 시간은 어제처럼 흐르고 내일처럼 오겠지. 하지만 이 짧은 글에 복잡하게 얽혀진 과거형과 현재형 동사들처럼, 그들은 뒤죽박죽 얽혀져 있다. 걸음 하나에 과거가 앞서 나가고 걸음 둘에 미래가 발에 차인다.

어디선가 물방울이 하나가 내게 날아들었다. 차가움을 전하며, 투명한 가루가 나의 팔 위에 산산히 흩어졌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