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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라는 말벌/2010년대

by solutus 2010. 7. 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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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것들이 세상 만물 중 유일하게 생각과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진 인간을 위해 죽는다. 그중 대표적인 것 중의 하나가 동물의 생명. 한 해 5억 마리의 이상의 동물이 온갖 '숭고한' 실험 대상이 된 후 안락사를 당한다. 인류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병을 치료하기 위한 백신 개발이란 명목 하에. 하지만 그런 아주 고상하고 숭고하며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인류의 존속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그 실험들 외에도, 단순 미용이나 인간 편의를 위한 약품 개발 때문에 마찬가지로 많은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떤 동물의 발을 일부러 부러뜨리고, 어떤 동물의 피를 일부러 지속적으로 뽑는다. 어떤 동물의 척추를 제거하고, 어떤 동물의 뇌에 칩을 박아 넣는다. 윗입술을 절개하는 도중 고통에 못이겨 앞발로 메스를 밀어내던 황소 개구리, 생식기관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죽어가던 유산한 쥐, 이들은 모두 아름다운 인류를 위해 스스로 자신을 희생한 선각자들이다.

언제나처럼 난 인류의 태생적 업보를 부인하지 않는다. 태생적 업보, 그것은 인간은 살아있었던 무언가를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존속을 위해 살아있었던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어쩌면 난 수명이 다해 죽은 고기만을 먹겠다고 선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최소한 나는 하이에나만큼 내 스스로의 양심을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육질이 좋고 혀에서 녹아내리는 무언가를 먹겠다며 한창 잘 살고 있던 무언가를 일부러 죽이는 수치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그런 사실을 알기란 불가능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죽은 고기는 맛이 없거나, 불길하거나, 혹은 병균 따위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불결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 나도 먹기 위해 죽이며, 입기 위해 모른 척한다. 나 또한 내 머릿속의 두통을 없애주는 동시에 다른 부위는 은밀하게 악화시키켜버리는 신비한 묘약을 먹으며, 이런 약을 개발해준 제약회사에 형언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내 수명을 5년이나 연장시켜주는 약을 먹으며 "오, 저를 75세까지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그때의 나는 내가 왜 그렇게 기를 써가며 75살까지 살려고 하는지를 모를 것이고, 그 수명 연장 약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이 실험을 통해 쓸쓸히 죽어갔는지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런 것들을 모르고 또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나를 위한 최고의 마취제 덕분일 것이다. 동물들이 스스로를 내던져 실험체가 되어줄 동안, 우리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우란 그들을 마취시키고 그 후 안락사해주는 것이었다. 내가 사회라는 곳으로 '직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전진할 때, 어떤 기업, 어떤 고위층, 또는 어떤 특정 세력의 탄탄한 몸매를 위해 위해 온몸을 성스럽게 묶을 때, 그 사회가 나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가장 최고의 행동을 나에게 마취제를 놓아주는 일일 것이다.

마취제를 맞고 난 후에 아마도 나는---마치 실험실의 동물들처럼---내가 왜 삶을 살았는지 모를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속삭여줄 수 있다면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너의 희생은 우리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어. 이건 불가피했단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발전된 그들의 기업, 사회, 단체, 국가를 보며 행복해할 것이다. 아, 난 저곳의 훌륭한 일꾼이었다고. 저기에 내 땀이 스며들어 있다고. 그러니 누군가 부디 말해달라. 저기 저 실험실의 동물들에게. 너희들 역시 우리들을 보며, 건강해진 우리들을 보며 부디 자랑스러워 하길, 행복해하길 바란다고. 너희들처럼 나 역시 행복한 실험체였다고.

실험실의 동물들과 함께, 난 새로운 문명 개조를 위해 이 아름다운 사회로 돌진해 들어간다. 난 이 사회와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킬 것이다. 일부러 그들의 등에 화상을 입힌 뒤 약을 발라주어 성능 테스트를 하는 것처럼, 일부러 그들의 눈에 독을 집어넣은 뒤 반응을 살피고 치료약을 넣어주는 것처럼, 그들이 나에게 일을 시키고 월급으로 위로하는 것처럼.

세상은 언제나처럼 우리를 기억해줄 것이다. 저 실험실 안 십자가에 스스로를 묶은 선각자들처럼, 아름답고 위대하며 찬양할 만한 성스러움을 지닌 인류와 사회의 행복증진을 위해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이 아름다운 세상에 내던졌기에. 취직과 승진을 축하하는 축배의 잔을 취기 가득한 얼굴로 들고 있는 어리둥절한 아이---우리 독자들을 위해, 저 아름다운 세상은 성대한 파티를 마친 후 자신들을 위해 열린 천국으로 가는 화려한 문을 흡족하게 바라보며 우리에게 우리 부모를 위한 작은 위령비를 세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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