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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식탁의 분해 및 수리

나침반과 지도

by solutus 2019. 2. 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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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엌에 있는 아일랜드 식탁은 상판이 접이식으로 되어 있다. 싱크대 공장에 의뢰하여 주문 제작한 아일랜드 식탁인데, 의뢰할 때 접이식으로 주문을 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아일랜드 식탁들은 상판의 크기가 아래쪽 수납 공간의 너비와 비슷하여 의자를 두고 앉기에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대개 조리대로 사용하거나 작은 스툴을 앞에 두어 커피나 차 등을 마실 때에 이용한다. 집에 아일랜드 '식탁'이 있더라도 식사를 하는 식탁을 따로 두는 가정이 많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집은 넓은 편이 아니라서 아일랜드 식탁을 쓰면서 또 다른 식탁을 두기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아일랜드 식탁을 주문할 때 상판을 접이식으로 의뢰했다. 상판을 접을 수 있으면 공간 활용에 좋을 수밖에 없다. 아일랜드 식탁 하나로 수납과 식사를 함께 해결할 수 있으니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문제는 의외의 곳에서 발생했는데, 접히는 상판 부위를 받쳐주는 목재 지지대 하나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접히는 상판을 지지하려면 두 개의 나무 지지대를 아래쪽에서 잡아당겨야 바깥으로 빼내야 했는데, 그 중 하나가 어느 날부터 바깥쪽으로 잡아당겨지지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여름에는 바깥으로 빠져나오지 않던 지지대가 겨울이 되면 잡아당겨진다는 것이었다. 겨울에 수축되어 있던 나무가 여름이 되어 팽창하면서 식탁 내부 어딘가에서 걸리는 게 분명했다. 생각해보니 아일랜드 식탁을 주문하여 설치한 것도 겨울철이었다. 여름이 되면 나무가 팽창한다는 걸 고려해서 여유를 두고 재단해야 했는데 공장 목수가 그를 고려하지 않은 채 너무 빠듯하게 설계를 한 탓이었다.

 

아일랜드 식탁의 상판 접이부를 지탱하는 목재 지지대. 여름이 되면 지지대가 팽창하여 당겨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2019. 2. 5.

 

 

2.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난 해당 목수에게 연락하여 수리를 의뢰했다. 목수는 시원하게 알겠다고 대답을 했지만 언제 해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상당수의 싱크대 공장과 인테리어 사무소가 그러하듯 A/S는 쉽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주문을 의뢰한 목수는 설계부터 재단, 조립, 마감까지 모두 혼자서 해내는 사람이었다. 즉 홀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이 문제 하나를 해결하고자 서울까지 쉽게 왕복하려 들지 않았다.

 

난 독촉을 하거나 성질을 부리거나 많은 돈으로 회유를 하는 대신 내가 직접 수리하기로 했다. 이런 작업은 귀찮고 오랜 시간이 걸리며 좋은 보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고생했다는 인정을 잘 받지도 못하는 데다가ㅡ그래서 목수도 이런 일은 하기 싫어한다ㅡ심지어 일부러 말을 해주지 않으면 수리가 되었다는 것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그런 류의 일ㅡ한 마디로 집안일ㅡ이었지만 어쨌거나 불편한 사람이 손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이라는 게 그렇다. 문제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삼으면 문제가 된다. 난 이 일을 문제삼기로 했다.

 

 

3.

가장 힘든 건 역시 아일랜드 식탁을 분해하는 일이었다. 식탁의 설계도가 없기에 상판 고정용으로 예상되는 나사를 모두 풀어봐야 했는데 수십 개의 나사를 풀었는데도 상판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혹시 목공 본드로 상판을 붙여버린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동안의 고생이 모두 헛수고란 뜻이었다. 심지어 상판을 고정하는 기다란 나사 하나가 목재 내부에서 부러지는 불상사까지 벌어졌다. 만일 같은 일이 한 번만 더 벌어지면 목공 본드고 뭐고 당장 상판을 분해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 판이었다. 

 

난 목수가 무책임하게 목공 본드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리라는 기대를 끝까지 놓지 않았다. 아니, 실은 분해를 포기하고 식탁을 원상태로 돌려 놓기 위해 나사를 다시 끼워넣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때, 나사가 다시 목재 내부로 조여들어가는 그 순간, 신기하게도 내가 목공본드를 사용하여 부착했을 거라 의심을 했던 식탁의 한 부분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그때 그걸 목격하지 못했다면 난 식탁을 수리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우연히 목격한 그 미세한 움직임이 내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아, 그래, 이 식탁에 목공 본드를 사용하지 않았어, 단지 내가 나사 고정부를 다 찾아내지 못한 것뿐이야.'

 

난 바닥에 눕다시피 하여 나사 구멍을 일일이 다시 조사했고 결국 아직 풀지 않은 나사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사 하나를 푼 뒤 상판을 밀었을 때 상판이 밀리던 그 순간의 기쁨은 당사자가 아니고선 알 수 없는 일이다.

 

분해가 끝나자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지지대를 사포를 이용해 갈아낸 뒤 역순으로 조립했다. 이제 걸리는 것 없이 상판 지지대가 잘 잡아당겨진다. 올 여름에도 지금처럼 그렇게 잘 움직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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